그해 겨울나무 
                        - 박노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도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서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굵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뿌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촉촉한 빛을 스스로 맹글며 키우고 있었다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에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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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집 [참된 시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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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진 못했지만 김선일씨가 살고싶다고 울부짖었단다.
->쪽팔리게 살고 싶다고 울부짖긴... 장렬하게, 뭐 그런거 없나?
미국이 일부러 우리나라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나온다.
->좋아! 이번 기회에 미국에게 큰소리 함쳐보는거야~!
그러나... 미국의 개들이 과연?
노 대통령한테 김선일씨 살아있는 희망 전달됨. (이미 죽었음)
->그래, 김선일씨 살아야 해. 행여 죽어봐. 매파들에게 구실만 줄 뿐이야.
김선일씨 죽었다고 보도됨.
->아~ 씨바~! 조선일보 비롯 파병하자고 난리겠구만~~
아니나 다를까~ 한겨레와 조선의 거울 앞뒤같은 사설을 보고
특유의 답답함 발작하다.
.
.
.
또다시 현상을 정략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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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선배가 강의하는 어느 학교의 중간, 기말고사 채점을 해주다가
이 답안지를 보고서 짜증이 확~ 밀려왔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 답안지는 100점이었다.
과에서 1등.
물어보니 정신 지체자라고 한다.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선배에게 이 답안지 
나한테 달라고 하고서 내 공간 한켠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나는 이 모범답안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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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친구들의 햄 만큼이나 부러웠던 것이 전자렌지였다.
뭐든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컴퓨터만큼이나 부러웠다.
대학교 이후로 편의점의 전자렌지는 각종 재료를
따뜻하게 데펴주는 역할을 해주었고,
특히 PX 에서 파는 만두, 떡갈비, 햄, 떡볶이 등등~~

휴가나와서 PX에서 먹었던 거 다시 한 번 해먹고 싶었지만
전자렌지가 없어서 결국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
2년 전 아직도 장작불과 가마솥에 밥 지어드시는 외가댁 가니
전자렌지가 있는 것이다. 외가에도 있는 전자렌지가 왜 우리집엔
없을까 아쉬워했던 적도 있다.

어머니께서 전자렌지를 결국 하나 사셨다.
어머니께 간단히 사용법을 설명드리고 함 해보자면서
제일 먼저 떡을 데폈다. 말랑해진 떡을 두고 어머니랑 같이
흐뭇해하고... ^^;
또 해보자며 냉동실에 있던 만두도 익혀보고...
그 다음주에는 마음속으로만 바랬던...
맥주 한병과 동그랑땡 비슷한 거 하나 사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자렌지에 안주를 넣고 돌렸다.
흐~~ 그런데 맛이 왜이러지... ^^;;
그 다음날엔 계란찜도 해먹어보고...
이번 주말엔 오징어에 조청을 발라서 돌려봐야겠다.

21일 학술대회 참가차 순천향대학교에 들렀다.
저녁에 다시 올라오는 길... 지금 아니면 기약없다는 생각이 들어
KTX 를 타보기로 결정...
5시 50분. 순천향대학교에서 나옴.
6시 17분. 온양온천역 도착.
6시 25분. 천안아산역 가는 버스를 탐.
7시 15분. 천안아산역 도착. (50분 걸림)

용산, 광명역 중 가장 빠른 걸루 하나 끊음.

7시 50분. 44분 차였으나 6분 늦어 드디어 기차를 탐. (35분 기다림)
8시 10분. 광명역 하차. (20분 탐)
8시 20분. 광명역에서 철산역가는 버스를 탐.
8시 50분. 철산역 도착 (30분 걸림)
9시 10분. 목적지 부천 도착.

졸라빠른 기차 20분 탈려고 타기 전 1시간 20분 타고나서 40분...

의자는 뉴스에서 나왔던 것 처럼 정말 불편했다.
속도가 빨라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조용해서 그런지 빠르다는 느낌이 잘 안남.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경치를 보고 있자니 
빠르긴 한 것 같은 뜨뜨미지근한 듯한 느낌이 들다.

결론 : 근거리는 차라리 새마을호가 낫다.
광명역이랑 천안아산역은 너무 불편하다.

고 2 쯤 해서 영화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집에 비디오도 없던 터라, 어쩌다 이모네 집 가서 보는
비디오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조금씩 용돈을 모아서 극장도 자주 갔다.
특히 정성일씨의 영화평론에 감동받아
당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토요일 밤 1시 30분에 정성일씨의
영화 평론을 녹음해 놓기도 했었다.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내가 이과를 지원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행여 내가 보고 싶은데 못 본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는 이벤트라도
하면 냅다 달려가곤 했다.
근데 나같은 사람이 제법 많았는지 프랑스 문화원에선
자리가 없다는 얘길 들었고 삼성생명 빌딩에선 쪼그리고 봤던
기억이 있다.

삼성생명 빌딩 1층 무슨 회의실에서 봤던 영화가
세상의 모든 아침이었는데 자리가 꽉 차서 결국 맨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봤다. 덕분에 앞사람 머리 신경 안쓰고 잘 봤었다.
더욱이 영사기에서 차르르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서 정말 영화보는 느낌이 팍팍 들었던 기억이 난다.
12년 전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푸르나에서 세상의 모든아침을
다운받아서 다시 한 번 감상해봤다.

비록 자막은 없어서, 게다가 불어라서 뭔소린지도 모르지만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풍기던 첼로 연주는
이어폰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며 옛 감동을 다시 꺼내주었다.
소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야할까?
이런 훌륭한 영화를 당시 비디오 포스터에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 옷벗기는 장면이 실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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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잔디광장...
집회봉쇄용으로 만들어졌다기에 드디어 5월 8일에 보러갔다.
그래도 계획하고 만들었을텐데...
눈 앞에 푸르른 잔디를 가로질러 밟아보며 어머니 사무실로
가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무슨 행사를 하려는지'광장'에는 의자가 빼곡히 들어찼고,
가드라인주위엔 사람들이 시작하기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스피커에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음악소리.
음향장비차량의 수도파이프 굵기의 전선들.
자동차 경적소리.
밟히다 못해 짓눌려 땅에 착 달라붙은 잔디들.
영화 이탈리아 잡 첫장면에서 나오는 그런 광장을 기대하진 않았어도,
마로니에 공원의 자연스러움을 기대했건만...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 수많은 의자다리에 짓눌려 또다시 상처받을
잔디들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결론은 하나.
내가 바라 본 서울 잔디광장은 집회 봉쇄용 담장에 불과하였다.

참 바쁜 4월이었다.
중간고사에, 경문학교 강의에...
역시나 이 사이에서 쫓기기만 했을 뿐, 여유는 갖지 못했다.
하기 싫어 배째기는 있어도...
아~ 경문학교도 하루면 끝이구나.
이미 거쳐간 선배들이 경문학교에서 가르치다 제자랑 눈맞아서
결혼하게 되는 이유를 알겠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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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어제 조선일보 만평제목이다.
94년 한창 재미있게 봤던 이현세씨의 만화'남벌'을 보면
남한과 북한이 손잡고 일본이랑 잘 싸운다.
철책 사이에 두고 총칼 겨누던 사이에서 손을 잡을지언정,
그 다음은 다시 총칼을 겨눌 수도 있다.
맞다. 이라크의 두 파가 점령군을 몰아내고자 공동으로 싸우고서
싸움이 끝나면 다시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시점에서 도데체... 이 만평을 싣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설에다가 따옴표도 안붙이고 미국을'최강대국'이라고 적어대는 조선일보.

진저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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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뻘 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학교 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에가는 길에 있는 포장마차 들러 전에 먹다 남은 반 병 시원한 국물에 한잔 하고 들어갔다는 얘길 제법 들었다.
요즘에도 그런 소주만 파는 포장마차가 있을까...
94년 재수할 때 수능 백일 쪼금 더 남겨놓고 삼수생 형 한명이랑 동기(?) 3명인가? 같이 지금 청량리 롯데백화점 건너편 포장마차 가서 자축 백일주 한 잔 했었다. 늦은시간이라 점포가 문을 닫아 어둑한 분위기에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 진정 으슥한 포장마차였다.
밤 10시 20분에 끝나서 집에 가는 길에... 그야말로 집에 가기 전에 속 뜨끈~히 하는 정도로... 
그 때 안주가 홍합탕처럼 골뱅이탕(?)이 싸구려 플라스틱 그릇에 푸짐히 나왔는데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약간 허기지다 싶으면 굵직한 골벵이 이쑤시개로 뽑아먹어 배를 채우고,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소주 한잔으로 시원한 국물로 속을 달래었다.
수능 끝나고 줄기차게 술집을 다녔건만, 골뱅이 무침은 있어도 위와같은 안주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비슷하게 찾은 것이 97년인가? 대학로 포장마차에서 골뱅이를 파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앉았건만,
나의 기쁨이 뻘쭘하게시리 국물은 안주고 초장이랑 골뱅이만 주는것이었다. 것도 한눈에 몇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만...
그렇게 약간 알딸딸하게 속 따끈하게 데펴주던 술 한잔은 추억속으로만 멀어져갔다.
'말죽거리 잔혹사'보다가 권상우랑 한가인이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는 거 보니 갑자기 그 때의 술한잔이 생각나 버렸다.
나중에, 대장금을 만나면 그 때의 맛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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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 총소리와 함께 칠십년대가 저무는 늦은 가을날 
느티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백색 수은등이 겸연적은 듯 켜져있고 
거리에는 나무잎새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어두컴컴하고 후미진 노량진의 거리를 
뜻모를 사연도 없이 온 적이 있습니다. 
도로변 어느 움푹 블거진 골목길 선술집에서 
무뚝뚝한 주인 할머니에게 
두 서너 번 들른 적이 있는 친구녀석은 살짝 눈인사를 했고 
잔뜩 움추린 우리들은 칠이 약간 벗겨진 동그란 연탄난로에 
뺑- 둘러 앉아서 
가슴보다 더 춥고 시린 손을 비비대며 녹였습니다. 
놀면 뭐하냐는 정겨운 말이 한 번 오가고 나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래기 국물로 
두꺼비 소주병을 두어 병 개 눈 감추듯 비운 뒤에야 
삼발이 위에 얹혀진 생조기탕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고 
미군부대 신문 배달원이 살짝 던져 준 살렘담배보다 
훨씬 더 꼬스운 냄새로 
온 육신이 하-- 해 졌습니다. 
소주잔을 꺽지도 않고 한 번에 톡 털어 넣고 
약간 쭈그러진 누런 냄비에 자글자글 끓고 있는 조기탕 국물을 
따스하게 물거진 두부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살아있는 것이 그처럼 오지고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날로 
별로 없을 듯 했습니다. 
젓가락 장단을 치며 가을비 우산속에, 슬픈 계절에 다시 만나요.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를 
누군가가 가슴으로 껴안 듯 불렀습니다. 
술잔을 주고받고 받고 주는 사이 술익는 분위기는 타올랐고 
문뜩 술잔 속에 있어 보인 듯한 
하양고 동그라한 얼굴이 어른거리면서 
뜬금없는 외로움이 먹물 번지듯 어깨쭉지에 엄습해 오자 
망각용 아스피린을 먹듯 소주를 꿀걱 들이켰습니다. 
방수가 된다고 해서 제법 알아주던 로렉스 시계를 맡기고 
주인 할머니께 깍듯이 인사를 드리고 나서 마지막 버스를 탔습니다. 
꿀물처럼 달디단 수돗물로 밤새 절인 위를 말끔히 치우고 
모닝커피를 든 황태자 다방 미스리가 으싸으싸 히프작을 흔들고 
가는 것을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흘끔 훔쳐보면서 
노량진 역 건너편 느티나무 아래 그 선술집이 
마치 전생에서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초가집인냥 
눈에 선- 하게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내가 부른 노량진 연가의 첫 대목입니다. 
-이십세기야 잘가라 1999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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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때였나?
책으로 먼저 보고 언젠가 티비에서 해주길래 봤다.
역시나 압권은 마지막장면이기에, 장면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봤다.
강렬하지 않은 톤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에 감동하고~
그동안 우리나라 학원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독립영화가 있지만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고,
마지막으로 키팅과 같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만화 베르세르크가 고문대로 끌려가는 인간의 마음을 글로 잘 표현했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교장실에 끌려가 사인하는 장면은 내가 저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과연 나라면...
머리 속에선 온갖 계산을 하며 나의 앞길을 떠올리고 사인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아 사인을 하고, 돌아와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약간 오버하며 괴로와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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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이 덮어진다.
초등학교 때 오락실 때문에 아버지께 죽도록 맞던 일.
우유값 안내고 오락실에 고스란히 바쳤더 일.
주산학원비 안내고 오락실에 갖다바쳤던 일.
50원가지고 오락 좀 오래했다고 오락실 주인한테 쫓겨나던 일.

오락하고 싶어서, 돈 넣는 척 하면서 주인한테 돈먹었다고 거짓말했다가 걸려서 구석에서 손들고 있던 일.
중학교 때 쌈 잘하던 짝궁 만나서 얻어받다가 필 받아서 죽도록 싸웠던 일. 그 뒤로 짝궁이 내눈치 보던...
독서실 갔다 오는 길에 깡패한테 걸려서 돈 없자 옷 뺐겨서 다음날부터 보복하겠다고 칼넣어다니던 일.
이 대부분의 일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면서도, 포장될 수 없는 몇몇가지가 있다.
7살 때, 주인집 딸... 자기가 줄넘기 하다가 지가 넘어져놓고 나때문에 넘어졌다고 해서 어머니한테 따귀맞던 일.
반 지하에서 전세 살 때, 주인집 옥상에 올라갔단 이유로 고자질당해 마구 혼났던 일...
친구에게서 배신당했던 일.
등등...
나라는 인간. 억울한 일은 추억으로 못덮는 인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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