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 쯤 해서 영화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집에 비디오도 없던 터라, 어쩌다 이모네 집 가서 보는
비디오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조금씩 용돈을 모아서 극장도 자주 갔다.
특히 정성일씨의 영화평론에 감동받아
당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토요일 밤 1시 30분에 정성일씨의
영화 평론을 녹음해 놓기도 했었다.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내가 이과를 지원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행여 내가 보고 싶은데 못 본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는 이벤트라도
하면 냅다 달려가곤 했다.
근데 나같은 사람이 제법 많았는지 프랑스 문화원에선
자리가 없다는 얘길 들었고 삼성생명 빌딩에선 쪼그리고 봤던
기억이 있다.

삼성생명 빌딩 1층 무슨 회의실에서 봤던 영화가
세상의 모든 아침이었는데 자리가 꽉 차서 결국 맨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봤다. 덕분에 앞사람 머리 신경 안쓰고 잘 봤었다.
더욱이 영사기에서 차르르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서 정말 영화보는 느낌이 팍팍 들었던 기억이 난다.
12년 전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푸르나에서 세상의 모든아침을
다운받아서 다시 한 번 감상해봤다.

비록 자막은 없어서, 게다가 불어라서 뭔소린지도 모르지만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풍기던 첼로 연주는
이어폰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며 옛 감동을 다시 꺼내주었다.
소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야할까?
이런 훌륭한 영화를 당시 비디오 포스터에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 옷벗기는 장면이 실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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