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었지?""응."여경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어렸을 때 바닷가에 산 적이 있어. 아버지의 전근으로 낯선 타향을 떠돌며 살던 무렵이었지. 
친구들을 사귈 만하면 다시 이사였고. 그 바닷가의 도시에서는 그래도 몇 년 동안 정착을 한 셈이었는데.""그 얘긴 들었었어. 저번에.""그래.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난 마을 어귀 개울물에 종이배를 띄웠지. 
심심해진 어느 날에는 개미 몇 마리를 실어 보내기도 했고. 
물길을 따라 종이배가 떠나면 나도 달리고 장애물에 걸려 종이배가 멈추면 나도 멈추고 
다시 종이배가 달려 내려가면 나도 또 따라 바다로 뛰어내렸지. 
배는 개미를 태우고 바다로 흘러갔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난 멀어지는 종이배를 바라보며 바닷가에 서 있었어.""그 개미들은 명우 씨 땜에 팔자에 없이 익사를 했겠구나.""그래 그랬겠지. 바닷가에 서면 멀리 섬들이 보였는데, 
나는 그 때 그게 그렇게 이상했던 거야, 섬들은 대체 어떻게 물 위에 떠 있을까 가라앉지도 않고. 
그래서 난 때로는 바닷속으로 깊이 잠겨 보기도 했었어. 
처음에는 코를 막아야 했지만 그 다음에는 꽤 오래도록 잠수할 수도 있었지. 
그 파란 남해의 물 속에 잠기면 아주 따뜻하고 안온하거든. 검고 푸른 해초들이 종아리에 부드럽게 엉기고, 
맑은 날이면 무수히 수면을 통과해 부서져 내리던 햇살들. 가끔씩 방파제 멀리로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이며 
고등어떼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살아 있는 고등어떼를 본 일이 있니?""아니.""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여경의 숨이 골라지고 있었다. 그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여경은 반응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이 들지는 못했다. 

공지영씨 소설<고등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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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방 가서 이 책을 찾는데 결국 못찾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전문이 있을 줄이야... 세상 참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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