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언장을 두번 써 보았다.
신교대 때, 전쟁에 나간다고 가정하에 함 써보고...
어머니, 조국이 어쩌구 저쩌구...
아~ 어머니, 동이 틉니다. 출정이 어쩌구 저쩌구...
참 나름대로 비장하게 쓴다고 썼건만,
그날 우수상 받은 유언장을 들은 나는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나는 뭘 쓴거지? 거짓말을 썼구나...
두번째 유언장은 상병 끝날 때쯤 썼다.
신교대 때처럼 교육의 일환도 아니고, 진짜 유언이었다.
일정에 있었기에 오전에 준비태세를 마친 우리는 
중대에 들어오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바로 앉아서 티비 시청을 하라는 지시.
당시 티비에선 남측의 배가 북측의 배를 부딪치며 밀어내는,
(군인이 보기에)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99년 초여름 일어났던 연평해전이었다.
군장도 풀지 않고 긴장감 속에 티비를 보고 있던 우리...
조금 있다 중대장이 들어와서 한마디 던지고 간다.
"전원 단독군장 착용으로 대기할 것."시간이 흐른다...
"전원 위장하고 있을 것."그렇게, 서로 얼굴에 위장하며 긴장감이 흐르고,
조금 있다 또 중대장이 들어온다.
"유언장 쓸 것"
B5 크기에 검정색 테두리가 있고, 진한 검정색으로 줄이 가 있는
전형적인 편지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유언장을 썼다.
- 전쟁이 나면... 내 진지는 어디더라?
- 내 진지에서 바라보는 적군(敵軍)은 어떠한 모습일까?
- 집에 있는 홀어머니는 어떻게 되는거지?
- 내가 죽으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통곡하실까...?
- 나는 왜 전방에 있는걸까? 후방이었으면...
어머니, 제가 오고 싶어 온 군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것이 군인이기에,
저는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제가 죽으면 제 물건은 누나에게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편지지 한장을 채웠다.
(제대할 때 저 유언장 원본을 들고 나오지 못한 것이 정말 한(恨)이다.)
이렇게 죽어버릴 수 있다는 것과,
괴로워 하시는 어머니를 상상하며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정말,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었던...
그렇게, 단독군장에 위장까지 하고서,
죽을 수도 있다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갔을 때, 
10중대 애들은 전투체육의 날 행사로 연병장에서 축구차고 있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사람이 어디까지 세뇌당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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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가을, 한밤중에 뛰쳐나가 총에 실탄까지 장착하고
손톱에 머리카락 잘라 봉투에 넣기까지 했던, 실감나는 훈/련/했던
친구에게 경의를 표한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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