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맑아 청계천이라 했다던데...
내가 처음으로 청계천로에 갔을 때는 중 2 때인가?
세운상가에 조립키트 부품사러 갔었다.
당시 세운상가 2층엔 포르노 테이프, 사진 등을 몰래 팔고 
있었고 가게 밖에 여자 나체사진을 붙여놓기도 했다.
아저씨들은 내 옆으로 와서 같이 걸으며 야한거 있다고 꼬드겼고,
난 옆으로 와서 같이 걷는게 삥뜯으려는 건줄 알고 
후다닥 도망간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부품사러 몇번 갔으며 간간히 보이던 야한 사진에
가슴 뛰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참고서 값 정가로 받아서 삥땅치던 기억도 난다.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우린 친구들의 책을 복사했으며,
청계천 헌책방을 돌아다녔다.
학교에서 책읽고 감상문 쓰라고 해도 우린 청계천에서 샀다.
한명 겨우 걸어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 주위로 산더미처럼
꼽혀있는 책들. 
어떤 책 있어요? 물어보면 없다. 또는 한번에 찾아서 빼주시는 아저씨.
그나마 장사가 안되서 업종을 변경하는 업소들이 아주 간간히
보였는데 이젠 헌책방이 거의 사라진 듯 하다.

몇천원 삥땅 쳐보겠다고 온갖 짓 다 하던 시절도 이젠 추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추억은 노래<청계천 8가>의 주무대인 황학동 벼룩시장이다.
고교시절 동대문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황학동 벼룩시장은 신기함 그 자체였고
그 뒤로도 자주 찾아가서 사는 거 없이 구경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누구 말따라 총 빼고 다 구할 수 있다는 명성처럼
없는게 없었다.
저런걸 누가 사나 싶은 골동품.
중고 LP, 불법LP(소위 빽판) 안팔린 LP.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허름한 인쇄에 촌스런 색깔표지의 온갖 교본들.
(당구교본, 스키교본, 헬스교본 등등)
맥가이버칼이 천원이라길래 샀더니 칼도 제대로 안들던 기억.
재수할 때 친구랑 같이 간 데스메탈 전문점.
큰 길 양쪽으로 늘어선 수십년된 5층 아파트들.
최근엔 많이 못갔지만 가끔 기분전환 하고 싶을 때면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황학동 벼룩시장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온갖 신기한 물건 구경하며 기분 업시키곤 했다.
이 모든 것이 청계천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게 됐다.
<청계천 8가>의 노래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약간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는데 말이다.


<청계천 8가>- 천지인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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